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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째 잘난 아이들 지키는 '巨木 어른'

20년만에 조우한 부천실고 이주항 교장 & 80년대 아픈 부천 산증인 지성수 목사 / 밤에 공부하는 근로청소년→ 자기존중감 필요한 청소년, 세대 변화 불구 <실고>만의 원칙 굳건 / 5.1 노동절 + 5.18 기념식 하는 '누구도 가지 않은 명문학교 지양 학교'

작은 체구지만 가히 거목(巨木)이 아닐 수 없는 이주항 교장님을 다시 만난 건 20년 만이다. 부천이라는 작지만 풍파 많은 곳에서 몸도 마음도 변한 기자를 한 눈에 알아보시고 반겨주시는 그는 변함없는 '선생님'이었다.


20년 전 택시를 타고 논밭, 허허벌판에 홀로 선 부천실업고등학교를 방문했던 기자는 당시 <부천실업고등학교, 오정산업단지 편입으로 ‘철거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오정산업단지라는 개발의 변화로 철거 위기에 봉착한 학교한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정작 기자는 택시를 타고 온 사실도 까마득히 잊었음에도 이주항 교장은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을 전해주셨다.)


20년만의 조우는 결론적으로 부천실고가 다행히 철거 위기를 피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시 만난 실고는 이주항 선생님처럼 거목의 학교로 여러차례 증축을 거쳐 몸집이 커졌다.

2004년 취재 당시 부천실고 정문 전경
부천실고는 지난 1989년 고강동 임대건물을 시작으로 주경야독할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그러다 지난 1996년 현재 오정구 오정동 390-5번지 280평 일대에 학교 건물을 짓고 당시 12회 졸업생까지 총 240명의 학생이 이곳을 거쳐 건강한 사회인이 됐다.

오정동 학교를 지을 당시 학교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이 모여 손수 건물을 지으면서 그들의 피. 땀. 눈물이 베인 학교라는 점에서 오정산업단지 개발사업에 밀릴 위기 속에 더욱 마음을 조렸던 순간의 기억이 기자에게 서서히 되돌아 왔다.

당시 오정산업단지 개발계획과 관련 지구지정 및 개발계획을 고시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배움터로 ‘공공교육의 장’인 부천실고가 토지수용 대상에 포함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부천실고 설립자인 이주항 교사는 부천시, 토지개발공사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학교 철거위기'를 호소하면서 기자와 처음 만나게 됐다.

20년 전 이주항 교사 
이 교사는 “실고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근로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 학력인정 고등학교로, 많지는 않지만 한 명도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가족 같은 학교공동체를 이끌어 오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학교가 오정산업단지에 편입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어렵게 만들어 온 학교를 지키기 위해 사방팔방을 뛰어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부천실고 교사 및 졸업생, 학생 일동도 "15년 역사의 소외계층을 위한 대안학교 부천실업고등학교는 당연히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며 학교 지킴이에 동참했다.

당시 부천시 권두현 부시장은 “국가가 해야 할 교육사업을 민간이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며 부천실고의 운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또 ‘제척’에 대해서는 토개공 측에 공문을 보내 제척을 고려할 것을 주문하는 방향을 제시하며 내부적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제척사유로 인정되면서 부천실고는 35년간 명맥을 지키게 됐고, 허허벌판이었던 주변 일대는 빼곡하리만큼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변화를 맞았다.


부천실고 내부의 변화도 컸다. 근로청소년들이 주(主)였던 학생들은 야간이 아닌 주간에 등교하는 학생들로 변했고, 당시 기계전공(용접) 등이 주였던 교과목은 미용-게임전공-바리스타-제과 등으로 옮겨갔다.


학년별 2개 학급, 학급별 10명이 정원으로, 사실상 직업교육과 인성교육 등에 주력하면서 열악하지만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자기존중감을 심어주는 텃밭 같은 학교다.


개교 30주년을 맞아 학교 안에 설치한 '부천실고史'에는 이 학교를 '그저 그런 학교'라고 칭한다.

"명문학교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학교입니다. 빛나는 출세, 자랑 없습니다. 일상의 찌질한 눈물과 애틋함, 유쾌한 웃음이 있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낸 <지지와 후원> <교사> <졸업생> <우리모두>가 있습니다."


초대 최지곤 교장님부터 30년 근속의 이주항, 박수주 선생님, 20년 이상 근속한 선생님 등 무려 200여명의 교사가 부천실고를 지켰고 현재도 30여명이 상근하면서 '잘난 아이들'과 함께 한다. 이주항 교장의 부인인 박수주 선생님은 30년 근속 후 명예로운 퇴직을 맞았고, 이들의 딸은 또다른 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가족사를 쓰고 있기도 하다.

1회 2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작게는 9명, 많게는 38명의 졸업생을 매년 배출한 부천실교 졸업생은 이제 총 735명에 달한다.

학생들 앞에서 지성수 목사님을 소개하는 이주항 교장님

20년만이 조우는 지성수 목사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70~90년대 아픈 부천의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지성수 목사님은 오랜 호주생활을 접고 2년 전 귀국해 이웃도시 시흥에 터를 잡고 계신다.

올곧은, 사회참여형 목사로 소신있는 활동을 부천에서 해 왔지만 그 스스로 '人生대학 부모박복과를 나왔다'며 '부러진 수저'라 자칭한 지 목사는 가족을 이끌고 90년대 말 호주로 이민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이젠 고국인 한국에서 자리를 잡자 귀국해 남은 여생을 또다시 사회참여형으로 살고 계신다.


지 목사님은 서산 산티아학교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부천실고 3학년생들에게 소개해 주는 길에 기자에게 동행을 청했고, 기꺼이 운전기사에 찍사(사진기자는 폄훼할 목적의 단어 선택이 아님), 기자라는 전천후 역할을 맡았다.

20여명 남짓한 학생들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각기 다르지만 아주 편안한 자세로 지성수 목사님의 설교인듯, 제인인듯 한 인생선배의 짧은 얘기를 듣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아직 타국의 도전은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것처럼 보였다.

워킹홀리데이 형식으로 이제 학교를 졸업해 사회인이 될 학생들에게 '이런 도전도 있다'는 지 목사님의 말은 각자 다른 인생의 아픔을 안고 있는 듯한 학생들에게는 호주까지 거리만큼 먼 얘기로 들렸으리라.

지 목사님은 마지막까지 '불리할 수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 길을 찾아야 한다'며 동기부여를 해보지만 이날의 응답은 없었다.

학교 이곳저곳을 소개하기 바쁜 이주항 교장님은 열쇠꾸러미를 든 모습이 흡사 수위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짧은 강연을 마치자 이주항 교장님은 학교 곳곳을 소개해주고자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학년별 교실을 둘러보고 헤어미용실, 메이크업실, 네일아트실, 피부미용실을 거쳐 바리스타, 제과, 도예, 목공 등 실용적인 직업교육실을 지나 컴퓨터실, 밴드연습실, 노래방, 탁구장, 춤 연습실 등 작지만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격존중 속에 한 명도 소외되지 않게 '작고 아담하지만' 들여다 볼수록 미로처럼 다채로운 학교는 더욱 돋보였다.


마지막 지하에 마련된 기계전공실은 좀처럼 이젠 사람의 발걸음을 느낄 수 없는 쇠처럼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졌지만 "얼마전 전학 온 한 명의 학생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공 중"이라는 말을 건네는 이주항 교장님의 얼굴은 따뜻했고 행복해 보였다. 학교를 설립하고 직접 용접을 가르치던 그에게는 두평 남짓한 교장실보다 더 편한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요일 오후에는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이, 금요일 종일은 문화체럼, 아침을 거른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만드는 아침밥, 신입생에겐 열띤 환영회를, '삶터제'라는 이름의 가을축제, 골라가는 소풍 등 얽매이지 않는 학교지만 부천실고만의 원칙을 보여주는 365일 중 가장 중요한 이틀이 있다.

학생이 직접 묘사한 5.18 민주화운동 

5월 1일 '노동절'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그 이틀이다. 초기 근로청소년들이 시작한 부천실고의 역사를 기억하고, 5.18이라는 시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작은 원칙이자 부천실고 공동체의 의지다.

학교 곳곳에는 역사를 담고 있다. 5월에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테마로 작은 소개의 글과 QR코드가 있고, 6월에는 6월 6일 현충일과 6.10항쟁 등 그달의 역사를 알게 하는 작지만 위대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묻어나 있다.


"학생들이 그래도 매달 역사를 소개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QR코드를 찍으면 가장 짧지만 왜곡되지 않은 그 당시 역사를 담은 유튜브와 방송으로 연결되면서 역사인식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있지요"라는 역사 선생님은 앞선 역사선생님이 퇴임하자 마자 몇 년을 기다려 부천실고 교사가 됐다고 한다.

누구는 학력인정 학교지만 '보잘 것 없는 학교'로 굴절된 시선을 드리우지만 정작 부천실고는 35년째 그들만의 도전과 역사를 한줄한줄 보태면서 가장 '조화로운 학교'로 나이테를 늘려가고 있다.

취재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이주항 교장님과 지성수 목사님의 투샷을 찍으면서 부천에서 사리지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잡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주항 교장님은 부천실고에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교장이지만 수위아저씨 같은 '잘난 아이들 지킴이 어른'으로 인생을 살고 계실 것이다. 또다른 '어른' 지성수 목사님은 허원배 목사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쉽지 않은 수락의 결정을 한 부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고문으로 '아픈 부천史의 산증인' 답게 지속협의 본모습을 찾게 하는 길잡이 어른이 되어 주시길 바라본다.

Ps. 이주항 교장님은 한양대학교 80학번으로 1983년 학내 민주화시위로 구속된 뒤 출소 후 부천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하며 부천과의 인연을 맺었다. 당시 20살 청년이 프레스 사고를 당하고 "언젠가 배워서 성공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의 나이 29에 부천실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노동자를 위한 주경야독 학교로 시작된 <부천실고>는 이제 35해를 맞아 주간학교로 전환됐고, 각각의 아픔을 안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공동체 학교'로 부조화의 시대에 조화로운 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고 싶은 분'은 <부천실업고등학교>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전화: 032-679-4212. 

김정온 기자  kjo91n@hanmail.net

기사등록 : 2024-06-07 13: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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