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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엔 아직도 골품제가 있다!'

[기고문] 부천시청 공무원 정근수 / 부제: The platform. 수직감옥의 영화를 빗댄 ‘건강하지 못한’ 부천시 인사행태 비판

2018년 10월 1일 부천시 공직자들의 자유토론방 형태로 공직내 소통의 순기능 창구였던 '열린소리마당'이 실명제로 전환되면서 공직내 언로 차단 불만이 장기화됐다.

부천공무원노조동조합(당시 유복동 지부장)의 줄기찬 복원운동에도 불구하고 익명제 전환이 이뤄지지 않던 '열린소리마당(이하 열소)'이 조용익 제23대 부천시장 취임 첫날 0시를 기준으로 복원됐다.


 
그러나 과거 익명제 복원이 아닌 '닉네임 형태 익명제' 전환이라는 점에서 '실효성‘과 ’의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지적은 현실이 되고 있다.

‘닉네임조차도 특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과거 활발한 소통은 회복될 기미조차 없다. 이런 현실에서도 과감히 닉네임이라는 가면조차 벗어던지고 ‘할 말은 한다’는 공무원이 존재한다. 2천5백여 공직자 중 현재로서는 유일한(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는 무이無二까지 가지 않길 바란다) 부천시 공무원 정근수씨가 3월 부천시 인사 후 열소에 올린 글을 그대로 <부천매일>에 공개한다.

이는 부천시청이라는 공공기관이 적어도 건강한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80만 부천시민에게 선한 행정서비스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역신문 기자의 (현실에서는 무모한)믿음 때문이다.

빼앗긴 열소는 돌아왔지만 과연 그 기능은 봄을 맞이했는지, 아직도 스스로 겨울 한파에 가둔 것은 아닌지 2천5백여 부천시 공직자들의 소회를 바라는 마음이다. ‘행정에 대한 비판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무려 12년간 행정광고 집행에 배제되는 억울함에도 아직은 살아있는 <부천매일>도 있지 않은가. -편집자 주-      


영화 < 더 플랫폼>의 포스터

스페인 영화 The platform은 수직 건물로 된 감옥을 배경으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흉폭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에 차 있는지를, 그리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 대한 줄거리나 감상평은 인터넷에 차고 넘칠 거니까 생략하겠다. *Platform의 사전적 의미 : 평형한 모체, 어떤 것의 기반. 연단, 판, 승강장 등

영화에서 시종일관 나를 압도한 것은 견고한 ‘수직 감옥’인데 이곳에서는 위층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줄에 매달린 판(platform)으로 아래층에 내려 보내야 아래층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끔 되어있다. 아래층으로 갈수록 음식의 질과 양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platform이 아래층으로 갈수록 생존을 위해 이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전율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견고한 수직 건물은 수직적인 신분 체계, 사회구조를 은유하는 것임을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다.
아니, 21세기 백주대낮에 뭔 신분제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법.
인도 정부가 카스트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음에도 정작 인도인들은 코웃음을 친다. 골품제의 신라가 골로 간 지가 까마득한 옛날이건만 부천시에는 아직도 골품제가 있다는 직원들의 탄식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하긴..스카이캐슬처럼 강고한 신분제도가 그리 만만하던가.

인간이 집단적, 사회적 존재라는 걸 전제한다면 The platform의 미덕은 자신의 소속집단에 이를 대입하여 유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천시의 3월 인사는 이 영화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소름이 돋도록 겹쳐 있다.

소위 주요부서라는 자부심과 긍지일까?
이번 인사도 행정국과 기조실의 잔칫상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그들만의 platform에서 승진잔치를 벌였다. 영화에서 위층 사람들이 음식을 독차지하고 남은 음식을 선심 쓰듯 platform으로 내려 보낸 것처럼 승진을 독식하고 이에 따른 위장의 부패를 염려해서였는지 타부서들의 승진을 아래층에 언 발에 오줌 갈기듯 군데군데 방부제처럼 뿌려놓는 동물적인 감각을 잊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송파, 서초, 강남. 이 3구가 그들만의 스카이캐슬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이번 인사를 보니 ‘행정, 자치, 노무의 3부서 판’인 것 같아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거시기하다.

인사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제기가 열소에 올라와도 아랑곳없이, 아니 이를 비웃듯이 이런 후안무치한 인사가 위용(?)을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무원들의 소심함을 경험으로 체득한 인사권자들의 인사 전횡과 지자체장의 묵인, 여기에 노조의 침묵이라는 삼자 간의 도원결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도원(桃園)이라...복숭아밭 아닌가.
한때 복숭아로 유명하여 시화(市花)까지 복사꽃인 부천시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삼국지의 도원결의와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건 두말하면 턱주가리만 아프다.

특히나 인사에 늘 정문일침(頂門一鍼)을 해야 할 노조가 이 결의(?)에 동참한 것이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백미(白眉)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인사를 시 측에 통째로 밀어 넣고 반대급부를 챙기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설사 그 반대급부가 직원들의 복리후생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인사에 대한 견제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타협이 아닌 타락이다.
직원들의 인사를 platform처럼 밟고 올라가 시 측과 외치는 ‘상생(相生)’은 투쟁방식의 변화가 아닌 변절이다.

노조가 인사에 대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잘못된 인사는 잘못된 거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노조의 그런 외침은 절대로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부러질지언정,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직원들에게 감탄을 넘어선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신뢰까지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조에게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니다.

그러나 現 노조는 그럴 의지가, 아니 생각조차 전혀 없어 보인다.
최근까지의 동향과 단체협약안의 인사 편을 보니 더욱 그렇다.
나는 내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지나치게 비약한다고 믿고 싶다.
부디 내 예측이 억측이고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아니, 누구라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통렬히 논박(論駁)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영화로 시작했으니 영화로 글을 맺어야겠다.
The platform의 수직 건물과 부천시의 그것 하고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한 달 간격으로 수용자들이 무작위로 층을 재배정 받아 위층으로 올라갈 여지라도 있지만 부천시의 수직 건물에는 애당초 그 층들이 낙인처럼 찍혀져 있어 승강(昇降)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본청 승강기는 쌩쌩 잘만 돌아가는데 말이다.

영화에는 platform의 음식들이 공평하게 전 층의 수용자들에게 분배되도록 고군분투하는 ‘이모구리라’는 여인이 나온다. 어쩌면 이 여인이야말로 노조의 역할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지금 부천시의 platform은 The platform인가? Their own platform인가?

※혹여 이 기고문에 대한 부천시청, 또는 공무원노조의 반박글이 <부천매일>에 전달될 경우 해당 글도 게재 가능함을 알립니다.   


김정온 기자  kjo91n@hanmail.net

기사등록 : 2023-03-25 18: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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