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이주민법률지원센터 '모모' 김원규 변호사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를 정년퇴직한 인생 이모작에 나선 인물이다.

그가 선택한 ‘제2의 인생’은 이주민 인권을 위한 삶이다.

“외국인들이 긴 이름을 소화하기 힘들어요. 단순한 이름으로 ‘모모’를 선택했는데 사실 작명은 아내의 도움입니다. ‘모두모두’의 약자가 ‘모모’이지요.”.

다소 마른 체구의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그의 삶을 (자발적으로)지배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어릴 적 목포에서 제재소를 하던 아버지 사업이 폭망한 뒤 단칸방에서 살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의 놀림대상이 된 그였다.

“경제적인 이유도 놀림거리였지만 유독 까만 얼굴의 자신을 아이들은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 같다”는 회고와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이 정치적 충격이었다면 그보다 앞선 생활 속 충격은 ‘놀림’으로 대변되는 타인으로의 선긋기였을 것”이라며 다소 담담하게 ‘정치적 각성시점과 성장과정 영향이 결합된’ 이타적 삶의 출발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는 비교적 안정적인 사범대학을 나와 교사발령을 받고 서울에서 물리 과목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고교 후배가 수배 중 자신의 자취방에 있다가 검거되고 ‘범인 은닉죄’ 기소를 앞두고 사직하면서 ‘교사’라는 삶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게 됐다.

여러 날 고민 중 무작정 소사삼거리에 내려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간 공장은 춘의사거리에 있었고, 86년부터 95년까지 부천의 공장생활은 계속됐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이주민법률지원을 위해 마련한 작은 사무실도 그 공장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는 게 ‘이 또한 연속되는 삶이구나’ 싶다”는 그는 ‘법에 1도 관심이 없던’ 삶이 가족을 위해 바뀌면서 98년부터 고시 준비를 하고 2003년 35기로 사법고시를 패스하면서 늦깎이 변호사가 된다.

그러나 ‘늦깎이 변호사’를 원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자각한 뒤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2006년 3월부터 최근인 2021년 6월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인권위 속 삶이 시작됐다.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여느 변호사들의 루틴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분노의 대상이 됐던 기득권 세력의 구조에 대한 항거, 모두를 위한 기득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는 김원규 변호사는 그 때문인지 유독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대가 컸고, 국가인권위를 거쳐 요즘 그의 연민과 공감의 대상은 ‘이주민’이 된 듯하다.

이주민을 위한 인권, 그들을 위한 법률지원 도전을 도운 중요한 매개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이하 아연대)였다.

“인권위에 정년퇴직을 앞두고 3개월간 공로연수 기간이 주어졌는데 이주민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에 아연대 이란주 대표에서 실습(?)을 요청했다”는 김원규 변호사는 “아연대에서 상담활동을 담당하면서 임금체불이나 비자문제 등의 현실을 알게 됐고, 계속 아연대에서 법률상담파트를 맡기보다는 이주민을 위한 법률지원의 독립적인 사무실을 개소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주민 법률사무소는 아직 국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로, 이주민 다수가 살고 있는 동네에 사무실을 둔다는 의미가 크다. 대부분 법률사무소가 ‘법원 앞에 헤쳐모여’ 하는 상황에서 이주민의 공간에 직접 들어간 ‘모모’는 이주민들에게는 마치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연상케 하지 않을까 싶다.

 
부천에 등록 이주민은 4만6천여명이다. 미등록 이주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짐작하기 힘들 정도다. 이중 강남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민이 다수를 이루면서 아시아인권문화연대도, 이주민 법률지원센터 ‘모모’도 강남시장에 똬리를 튼 이유는 이주민을 위한 접근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독 부천에 많은 이주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별 공동체 활동과 달리 전체 이주민을 위한 네트워크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더욱이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네트워크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은 보폭이 줄어들고 있고, 그중 법률지원은 더욱더 사각지대로 놓여있다.

“인권위 말년은 인권상담조정센터에서 일했는데 인권위를 맨 처음 오는 사람들이 들르는 곳으로 진정이나 민원을 접수받다보니 모든 사건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는 김 변호사는 “억울한 일을 당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창구는 많이 생겼다. 물론 실효성은 둘째치고. 그러나 이주민에게는 그게(창구) 없더라. 제도가 없는게 아닌데 실질적 도움이 거의 안된다. 언어에서부터 오는 장벽으로 그들에게는 창구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안타까운 이주민 인권의 현실을 전했다.

실제 NGO나 로펌 등의 공익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굵직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일상 문제는 지원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주민이 겪는 소소한 사건에 밀착도움을 주는 법률시스템이 필요해 ‘모모’의 도전은 최종 역할인 변호사 이전에 인권위 오랜 경험의 연장선상인 상담을 시작으로 때로는 행정사 같은 1인 다역의 소화다.

 
“8월에 문을 열었지만 오가다 문을 두드리는 이주민은 거의 없다”는 김원규 변호사는 “제가 부딪혀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어요. 이주민지원활동가 단톡방 등을 통한 교류가 중요하지만 아직은 아연대에서의 인연으로 베트남 이주민들을 위한 소소한 법률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개소 이후 생활을 전했다.

 
“최근 베트남인이 킥보드를 타다가 중년 여성을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사고를 낸 당사자는 미등록 체류자로, 병원까지 따라갔지만 무서움에 종적을 감췄다가 경찰 신고로 잡혔다. 결국 큰 액수의 합의금을 줬다고 하는데 결국 이주민, 그것도 미등록 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과 한국의 법을 몰라 겪은 그에는 큰 금전적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베트남 남성은 작년에 일한 임금을 아직도 못 받았다. 무려 240만원 정도로 그에게는 큰 돈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용노동청에 신고하고 도움을 받는데 쉽지만 언어장벽과 법적 도움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이주민들은 고용노동청 신고조차 쉽지 않다. 결국 임금체불 확인서도 받았고 회사에 지급명령도 떨어졌지만 사측이 이의신청하면서 상황이 꼬였고, 결국 조정절차를 통해 지급을 약속받았다. 변호사 선임절차를 거치고 나니 (사측도, 관련기관도)태도가 달라지더라.”

김원규 변호사는 최근 법적 조언의 사례를 들면서 “정말 소소한 것인데 그들에게는 삶이 결정되는 큰 기로에서 제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의 산 증인과도 같은 그에게 ‘인권이란?’ 물음을 던져봤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를 상대로 한 권리로 시작했죠. 핵심적 가해자가 과거에는 국가였기에...민간인이 대상인 인권침해는 그보다 소소했던 일이었던 게 사실이지요. 이주민 법률지원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목표는 다민족 국가로 가는 대한민국이 큰 부작용없이 변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됐어요. 그게 곧 우리나라 인권 발전에 기여하는 게 아닐까...”

“이주민을 이용한 갈등양상을 만드는 정치가 만연했지요. 과거 나치가 그랬고, 얼마전 미국 대통령이던 트럼프가 그랬죠. 트러블이 있을 때 이주민만 피해를 겪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이주민과의 상생은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굉장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적이 다르다는 것, 혹은 없다는 단 하나의 차이일 뿐인 데 그 때문에 많은 불이익을 받거나 갈등을 겪는 일을 최소화 하는 역할이 모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 60의 인생은 나름 (인권이라는)일관성은 있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곧 김원규 변호사에게 '인권'이란 '그의 삶 자체이자 전부'라는 고백으로 들렸다.